[AI칼럼] “앱 하나로 건강을 관리하는 시대, 그러나 누군가는 소외된다” — 의료서비스의 디지털 장벽에 대한 사회적 성찰

디지털 헬스케어, 편리함의 그림자

의료서비스의 새로운 불평등, ‘접속할 권리’

모두를 위한 기술,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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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헬스케어, 편리함의 그림자

 

“병원 예약, 앱으로 하세요.”
요즘 진료를 받기 위해 전화를 걸 필요가 없다. 병원 예약부터 건강검진 일정 관리, 심지어 처방전 확인까지 모두 스마트폰 속 앱 하나로 해결된다.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앞다투어 ‘모바일 병원’을 만들고, 정부도 전자의무기록과 원격의료를 적극 추진한다. 편리함의 시대다.
하지만 편리함의 문이 열리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벽이 생겼다.

한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56%가 ‘디지털 의료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스마트폰은 있지만, 앱 설치나 회원 가입 과정에서 이미 포기한다. QR코드로 진료 예약을 해야 하는데, 카메라 기능을 켜는 법조차 모르는 노인들이 많다. ‘앱으로 예약하세요’라는 문장은 이들에게 “당신은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기술은 편리함을 약속하지만, 그 편리함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의료의 디지털화는 효율성과 속도를 얻는 대신, ‘비접속자(非接續者)’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고령층이 스마트폰 앞에서 멈춰 서는 이유

 

디지털 전환은 의료 현장에도 빠르게 스며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진료의 수요가 폭증했고, 병원들은 자체 앱을 만들어 예약, 진료, 결제를 통합했다.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10곳 중 8곳이 독자적인 헬스케어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고령층에게 스마트폰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병원 예약 앱은 대부분 복잡한 로그인 절차와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며, 글씨가 작고 메뉴가 많다. 일부 노인들은 “앱이 나를 시험하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디지털 격차의 원인은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다. 교육 기회의 부재, 접근성 낮은 인터페이스, 기술 중심의 정책 설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국립국어원의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언어 표현의 복잡성이 노년층의 이해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결과도 있다.
의료 시스템이 기술의 속도를 좇는 동안, 인간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의료서비스의 새로운 불평등, ‘접속할 권리’

 

병원 예약은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라 ‘의료 접근권’의 문제다.
앱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병원 예약이 늦어지고, 건강검진을 놓치거나 진료를 포기하는 일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 노인의 약 23%가 ‘디지털 접근 불편으로 인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이다.
예전에는 거리나 비용이 장벽이었다면, 이제는 ‘기술’이 장벽이다.
스마트폰을 다룰 수 있는가, 앱 로그인 절차를 통과할 수 있는가가 건강의 기회를 결정한다. 의료의 디지털화가 ‘접속할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한 체계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은 “정보사회에서 불평등은 정보 접근의 격차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의료 분야에서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헬스케어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데이터를 입력할 수 없는 사람은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다.
의료 디지털화의 진짜 위험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기술이 사람을 가르는 방식에 있다.

 

 

모두를 위한 기술, 가능할까?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첫째, 디지털 포용 의료 정책이 필요하다. 단순히 ‘앱을 쉽게 만들자’는 수준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적용해야 한다. 글씨 크기, 음성 안내, 자동 로그인, 간소화된 메뉴 구조 같은 기본적인 접근성 강화가 시급하다.

둘째, 고령층 대상 디지털 건강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서울시의 ‘디지털 시민학교’, 복지부의 ‘시니어 헬스케어 리터러시 교육’은 좋은 시작이다. 병원 대기실에서 간단히 앱 사용법을 배울 수 있는 교육 부스를 설치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이다.

셋째, 비대면과 대면의 균형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더라도, 오프라인 창구는 반드시 남겨야 한다. 기술이 대체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불편함’이어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분명 의료 혁신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 혁신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려면, 기술의 속도를 사람의 속도에 맞추는 사회적 설계가 따라야 한다.

 

 

 

 

기술은 인간을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앱 하나로 병원 예약 끝!’이라는 광고 문구는 이제 익숙하다.
하지만 그 문장 뒤에는 ‘앱 하나로 병원 예약도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술은 인간을 돕는 수단이지, 인간을 선별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디지털 헬스케어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기술이 모두를 위한 것인가?”

의료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그 권리가 기술의 벽 뒤에 갇히지 않도록, 사회는 더 세심해야 한다.
디지털이 진정한 의료 혁신이 되려면, ‘접속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문부터 다시 열어야 한다.

 

 

작성 2025.12.11 06:08 수정 2025.12.1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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